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819년 애덤스-오니스 조약으로 [[스페인]]으로부터 플로리다 지역을 이양받았다. 이에 미 연방정부는 이 신생 주에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. 그 결과로 1838년, 플로리다 헌법에 대학 건립을 위한 부지를 할당하기위한 법령을 성문화 시켰고, 1845년, 플로리다가 25번째 미 합중국의 주로 편입되면서 플로리다 주의회는 수와니 강 반대편 지역에 두개의 주 지원 신학교를 세우는 계획안을 투표로 부친다. 이에 프랜시스 W. 엡스(Francis W. Eppes)와 시 유력자들이 남성전용대학인 플로리다 전문학교를 세우는 힌퍈 서 플로리다 신학교를 탤러해시에 유치하는 것 역시 통과시킨다. 그후 1858년, 여성전용대학이던 탤러해시 여성대학까지 흡수해 남녀공학으로 탈바꿈된다. 1860-61년 당시 교육기관들과 마찬가지의 추세로 동교에서도 군사교육을 실시하게 된다. [[남북전쟁]] 당시 동교는 플로리다 군사대학으로 개칭되었고 이 학교 출신 생도들이 참전해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. 이후 북부연방군이 점령, 주둔하면서 남북전쟁 전 학교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린다. 다만 남북전쟁 당시 1865년 자연 다리 전투에서 북부 연방군을 패퇴시켰던 전적때문에 본교 학군단은 승전기를 승락받은 미 대학 4개 학군단 가운데 하나이다. 1960년대와 7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운동에 정점에 선 대학이었다. 흑백통합, 여성인권운동, 그리고 [[베트남 전쟁]]이 촉발된 [[반전주의|반전운동]]도 펼쳐 '남부의 [[버클리]]'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. 1962년 맥스웰 코트니라는 [[흑인]] 학생이 최초 동교 흑인학생으로 이름을 올림으로서 흑백통합 대학이 되었고 이는 플로리다 주 소재 대학교들 가운데 흑인 졸업률이 가장 높은 학교로 기록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